겟타 로보 사가 : 이시카와 켄의 최고 걸작 by Promi

사실 각 겟타 작품들은 내 마음 속에서

코믹스 >>> 신겟타 > 체인지 겟타 >>>>>>> 넘을 수 없는 벽 >>>>> 네오겟타

정도의 순위를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코믹스가 가장 우선이냐고 한다면...
OVA 에 담겨있는 진화나 생명이라는 테마, 상쾌할 정도로 잔혹한 테이스트는 결국 코믹스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하고, 약 30년에 걸쳐 연재된 그 전통과 역사, 장대한 스케일은 코믹스를 뛰어넘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코믹스 - 즉 이시카와 켄이 그린 다섯 개의 겟타 시리즈, <겟타 로보> <겟타 로보 G> <겟타 로보 고우> <진 겟타 로보> <겟타 로보 아크>가 바로 이번 포스팅의 주제.


겟타 로보 ~ 겟타 로보 G :
소년 만화에서 보다 무거운 작품으로

(표지는 전부 후타바 문고판으로 통일)

겟타 로보

"겟타여, 우리들은 위대한 유산을 남기기 위해 죽어 가는 거다.
우리들의 죽음은 쓸모 없는 게 아냐. 자, 와라, 죽고 싶은 놈들은 와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사오토메 연구소에서 개발한 겟타 로보가, 자신들이 과거에 살고 있었던 지상을 되찾고자 침공해오는 공룡제국에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

이후 코믹스판들에 비해서는 소년 만화적인 테이스트가 진하긴 하지만(료마가 무사시의 코골이가 시끄럽다고 투정을 부린다거나, 무사시가 미치루의 호감을 사려다 툭하면 사고를 친다거나), 사람 목숨이 바람 불면 낙엽 떨어지듯 쉽게 죽어나가는 잔혹성은 여전한데다, 생각할 거리가 많이 내포되어 있는 편.

예를 들면 적이긴 하지만 "과거 이 땅에 살았고" "지금도 지저에 존재하는" 이들인 공룡제국 주민들은 사실 지구에 살 권리가 있는 게 아닐까, 애초에 지구에 주인 같은 게 있단 말인가... 같은 근본적인 의문이라던지, 미지의 병균에 오염되어 죽은 청년을 보고 적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격분했는데 사실은 우연히 인류측의 세균 병기가 노출된 것 뿐이라던지... 단순하지는 않은 작품.

게다가 엔딩도 (당시 소년 만화로서는) 매우 충격적인데... 이 부분은 G에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루기로.

겟타 로보 G

"아무리 바보 녀석들이라곤 해도, 사촌과 옛날의 친구들이다...
어떻게 해서든 구해 보자고 생각도 해봤지만, 이제 저 녀석들은 몸도 마음도 인간이 아냐. 기계 덩어리, 고철 쓰레기다! 미쳐버린 고철 쓰레기란 말이다. 내 손으로 전부 부숴주겠어!"

그때까지 개그 캐릭터였던 겟타 3호기의 파일럿, 무사시가 노심을 폭주시켜 자폭함으로서 겟타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비장한 전개가 없었더라면, 사실 겟타 로보는 "최초의 변신 합체 로봇물"이라는 칭호만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겟타 로보의 엔딩에서 무사시의 복수를 한 후로도 료마와 하야토는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만 했고, 그 사실이 작품에 무게를 실어주게 된 것이다.

G는 첫 에피소드 - 하야토의 앞에 나타나 그를 회유하려 드는 옛날 동료들과 사촌이, 사실은 백귀제국이라는 새로운 적에 의해 거대 로봇의 파츠로 화해있었고, 그들을 하야토가 직접 죽인다는 내용부터 시작해, 전반적으로 죽음이 얽힌 인상이 강한 편이다.

그래도 3호기의 신참 파일럿 벤케이의 밝은 태도, 미치루와 겡키의 가족적이고 코믹한 분위기는 삭막한 전개를 다소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주었고, 엔딩에서는 적을 깔끔하게 물리침으로써 겟타팀과 지구는 평안을 되찾은 듯 보였다. 그런데...

겟타 로보 고우 ~ 진 겟타 로보 :
장대한 스케일과 비극적 테이스트

겟타 로보 고우(號)

"료마, ... 대체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냐?"
"근사한 일이야"

여기에서 겟타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학교를 다니는지는 매우 의심스러웠지만) 고등학생 료마와 하야토, 벤케이로 구성된 겟타 팀과, 사오토메 연구소라는 배경을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등장한, 30줄에 접어든, 얼굴에 많은 상처를 가진 하야토가 엄청난 체력을 가진 소년 이치몬지 고우를 납치하다시피 해서 새로운 겟타에 태우는 모습. 응? 데자뷰가 그리고 새로운 적과의 싸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고우를 접한 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료마는, 벤케이는, 사오토메 박사와 미치루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왜 하야토가 홀로 남아 인류를 지키려 들고 있는 것인가. 왜 그는 겟타를 타지 않는 것인가.

후반부가 되어서야 벤케이와 사오토메 박사, 미치루를 비롯한 연구소의 직원들은 겟타에 관련된 사고로 모두 죽었으며, 연구소는 폐허가 되었고, 겟타는 봉인되었으며, 료마는 "다시는 겟타에 타지 않겠다"며 연구소를 떠나 산 속에서 가라테 도장을 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 사건은 진 겟타 로보에 수록되어 있다)

어쨌든 간에 무장 혁명 조직의 리더였고 가장 윤리 의식이 희박했던 하야토가, 인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사령탑이 되었음에는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동기는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의 죽음". 무사시와 벤케이, 사오토메 박사와 연구소 직원들, 그가 현재 속한 조직 NISAR의 부하들 등, 죽어간 이들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해서 싸우는 것이라 믿고, 그를 위해 또 다른 이를 겟타에 태우고 관련시킴으로써 또 다른 죽음을 짊어지게 되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내용 소개로 돌아와, 고우와 쇼우, 가이라는 젊은 새 겟타 팀을 구성한 기쁨도 잠시. 그들은 인질을 잡은 적에게 겟타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일본 정부로부터 겟타를 들고 도망치거나, 봉인해두었던 진겟타를 다시 되찾고 겟타에 빨려 들어가는 등, 적과 인간, 겟타선에 의해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전진해나간다.

고우는 팬이라면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스포일러) 과거 사오토메 연구소의 직원들, 벤케이와 무사시, 젊은 겟타팀과 료마의 혼이 전부 융합된 진겟타가 화성에 충돌해 "미래에 무언가를 남기는"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비극임과 동시에 "근사한 일"이다. 팬들은 이 엔딩의 여운에 한숨을 절로 쉬게 될 것이다.

진 겟타 로보

"겟타 로보!!! 네놈은 대체! 네놈은 대체 우리들에게 뭘 시키려는 거냐!!!"

고우는 그 흥미로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G와 고우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기존 겟타팀은 해산되었단 말인가... 를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 불친절하기 그지 없는 만화였다.

그런 미싱 링크를 채워주는 작품이 바로 이 진 겟타 로보. 젊은 료마와 하야토, 벤케이가 등장해, 가짜 자기들이 탄 진겟타와 싸운다는, 겟타 로보 및 G의 소년 만화적 테이스트가 담긴 오프닝부터 시작해, 이윽고 대체 무슨 사건이 일어나 사오토메 연구소는 폐쇄되었고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어째서 료마는 겟타선에 두려움을 느끼고 떠났는지 등이 치밀하게 그려진다.

이렇게 G와 고우 사이의 공백이 채워짐으로써 겟타 로보 시리즈는 대단원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니, 보통 작가라면 엔드 마크를 찍은 채 내버려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겟타 로보 아크 :
그리고 영원한 수수께끼로

겟타 로보 아크

"눈을 떠라, 아크! 깨어나라, 타쿠마. 너는 나가레 료마의 아들이지 않은가!
 겟타선을 받아 태어난 겟타의 아이다! 눈을 뜨란 말이다!"

고우의 깔끔한 엔딩은, 사실 이시카와 켄으로서는 매우 드문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좋게 말하면 오픈 엔딩, 나쁘게 말하면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완> 식의 엔딩이 제일 재미있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담당으로부터 "팬들에게 빈축을 사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깔끔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엔딩에 속편을 낸다는 선택을 하다니, 과연 이시카와 켄이라고 해야할까.
게다가 겟타 아크는 무려, 모든 코믹스 중 가장 흥미진진하다.

폐허가 된 세계에 한 대의 겟타 로보가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한층 나이를 먹어 (추정) 50대가 된 하야토가 새로운 적에게 응수하기 위해 보낸 겟타 중 하나인데, 타고 있던 파일럿이 사망해서 추락한 것.
그 겟타에 갑자기 나타나서, 아무 보호 장비도 없이 올라탄(그러면 보통 인간은 3분도 버틸 수 없다...) 청년을 보고 기겁을 하는 연구원들.
그러나 그 청년은 태연하게 겟타는 자신이 지키겠다며 하야토는 거기에 있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나가레 타쿠마, 아버지의 이름은 나가레 료마라고 말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이긴 해도, 애초에 이번 겟타 팀 자체가 역대 겟타 팀중 가장 흥미진진한 인사 구성이기도 하다.

나가레 료마의 아들이자 일명 "겟타의 적자"라 불리는 타쿠마,
공룡인류와 인간의 유일한 혼혈아인 카무이,
고우에서 겟타와 교감해보였고 결국은 동화했던 타일의 동생 바쿠.

이 세명으로부터는 그야말로 겟타 로보 사가의 역사와 인과성을 잘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술 더 떠서, 과거의 철천지원수 공룡제국과 손을 잡고 새로운 적을 물리치는 전개라니!
게다가 물론 서로 뒤통수를 칠 생각도 하고 있다니!
(잠시 진정하고) 어쨌든, 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스포일러) 시공을 넘어 미래로 도약한 겟타팀은, 겟타선에 의해 부활된 무사시를 포함한 클론들, 료마가 흡수된 것이라 추정되는 겟타 엠퍼러 등이 다른 행성을 침략하고, 투항자를 죽이며, 그 별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드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사실을 정당화하는 이론은, "겟타선은 의지를 가진 에너지이며, 인류는 그 사도로서 선택되었다. 겟타선에 선택된 인류야말로 우주를 지배할 자다"라는 것.
정의의 사도인지 악역인지 헷갈려요 레벨을 뛰어 넘어, 이쯤 되면 그냥 악역이다.
이 사실에 회의를 느끼는 카무이는 인류(겟타)와의 전쟁을 결심하고...!


......라는 숨막히도록 흥미로운 전개가 개시되는 참에 연재는 잡지 폐간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그로부터 수년도 지나지 않아 이시카와 켄은 숨을 거두었다.

이시카와 선생님은... 끝까지... 우릴... 농락할 생각이란 말인가...


겟타 로보 사가 : 하나의 연대기로

엄밀히 말하자면 이상의 다섯 시리즈를 묶어 가필, 정리해서 출간한 것이 <겟타 로보 사가>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편의상 현재까지 나온 겟타 코믹스 시리즈를 통칭하는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이 포스팅에서는 대체로 후자의 의미로 사용).

(사실 코믹스를 소개할 겸 해서 내용을 정리하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고우 1권까지만 정발되었고, 지금은 품절 상태라 손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유감이기는 하다. 일본도 품절 상태이긴 하지만, ebook japan 을 이용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구입이 가능하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겟타 로보 사가는, 1974년부터 2003년까지,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총 30년을 연재해온 만큼 역사와 전통조차 느껴지는 장대한 스케일, 겟타선이라는 미지의 에너지에 농락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쌓아올린 죽음에 지지 않으려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 흥미진진한 시리즈다.

뒷 내용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다이제스트식으로 보여지긴 했지만) 아크의 속편을 읽을 도리가 없어진 지금은, 미완 엔딩을 그토록 좋아하시던 이시카와 선생님께 놀아나고 있는 착각마저 들긴 하지만... 어떤 팬 말마따나 언젠가 죽으면 그쪽에서도 만화를 그리고 있을 그의 속편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포스팅을 마무리.


앞으로는, OVA 신 겟타와 체인지 겟타, 그리고 이시카와 켄의 다른 작품 <마수전선>의 소개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다시 지름 기록도 해야(...)
블로그를 재개장하니 나름 탄력을 받네요 :)


덧글

  • 하이얼레인 2012/11/01 03:24 #

    "깨어나라, 타쿠마. 너는 나가레 료마의 아들이지 않은가!" "쿨.....꾸벅꾸벅..."

    근데 카테고리 이름이 활활 끓어오르네염' ㅂ'
  • Promi 2012/11/02 03:38 #

    "나는 겟타의 적자다아아아아---!!!"

    아오모리 현지에서 팔던 티셔츠 "No Apple No Life"의 패러디라능 그렇다능...
  • 존다리안 2012/11/01 09:19 #

    겟타로보 고의 국제연합군과 란도우 군단의 전투는 건담류 빼고 코믹스에서 묘사된
    가장 실감나는 거대로봇 전투씬으로 기억합니다.
  • Promi 2012/11/02 03:47 #

    넵, 정말 박진감 넘치는 전투였던 것 같습니다. 고우 이후로는 전투씬의 화력이 바짝 올라가서(물론 이시카와 선생님의 그림체가 바뀐 탓도 있지만;;;) 눈이 즐거워요!
  • 풍신 2012/11/01 11:26 #

    정말 사가의 마지막에 연재 중단하면서 잠깐 들어가 있는 예고편 같은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한데 말이죠. 카무이의 배신과 타쿠마의 선택, 이야기는 어디로 갈 것이었나!? 하지만 이시카와 켄옹이 돌아가셔서....OTL...
  • Promi 2012/11/02 03:47 #

    그 예고편이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전 그만 모든 코믹스중 아크를 편애하게 되버리는 것 같아요 ㅠㅠ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일본 겟타 팬에게 "난 겟타 아크 뒷 내용이 어떻게 될 지 잘은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바쿠는 암튼 끔찍한 일을 당할 거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뿜었습니다. 이시카와 선생님이 3호기 파일럿들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해대서 그래요!
  • 루루카 2012/11/11 17:33 #

    코믹스로는 Go 까지 본 것 같은데... 다시 보고 싶네요. ^_^`...
  • Promi 2012/11/11 19:13 #

    안녕하세요, 루루카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정말 권하고 싶은데(특히 아크가 재미있거든요!!!), 한국에는 고우까지 밖에 출판되지 않아서 유감이에요 T_T 게다가 제가 겟타를 좋아하게 된 때는 이미 절판이어서 한글판이든 일본판이든 구하기 어렵더라구요.
  • 루루카 2012/11/11 19:16 #

    역시 그랬군요...

    한글판 코믹스로 Go 본 것도 벌써 10년은 되었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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